4500-5000년전 민간의에 의해 고려인삼을 약용으로 사용하였으며 영약, 선약, 불로초 등으로 불리워지면서
삼국시대에 중국까지 전파됨.
중국의 후한헌제 건안년대 (서기 196-220) 의 장중경의 저서 "상한론"과 그후 "명의별록" "신농본초경"등에
인삼이 귀중한 약재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음.
아세아 인삼중 한국에서 재배 생산되고 있는 인삼을 '고려인삼'이라고 하여 예로부터 가장 고귀하게 여겨왔다.
고려인삼은 외형상 뇌두가 충실하고 주근이 비후하고 원주형이고 지근의 발달이 양호하여 사람모양을 닮은
형태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고려인삼의 이러한 외형상 특징은 한국의 기후조건과 토양환경 및 발달된 재배방법에 의해 발현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인삼은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동양제국에서 오랫동안 보혈강장제로 이용해 온 약초로서 소련의 과학자 C.A.Meyer가
1843년에 만병을 치료한다는 뜻으로 학명을 panax ginseng C.A.Meyer라고 명명 하였으며 한국에서 생산되는 것을
제일로 취급하고 있어서 한국에서는 인삼을 고려인삼이라고 한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의 지역에도 인삼과 유사한 것들이 있지만 고려인삼과는 계통이나 형태, 그리고 성분상의
차이가 있다. 고려인삼은 오가피과 파낙스속 , 인삼종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파낙스 속에는 6개의 종이 있다.
*인삼에 얽힌 강처사 (금산의 유래)
남이면 성곡리 개안이 마을은 인삼의 눈을 뜨게 한 곳이라는 뜻으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지금부터 약 1,500여년 전에 강씨 성을 가진 선비가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모친마져 자리에 눕게 되었다.
효자인 아들은 진악산에 있는 관음굴에서 정성을 들여 모친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그러던 어느날 꿈속에서 산신령이 나타나 "관음불 봉암벽에 가면 빨간 열매 세개가 달린 풀이 있을 것이니
그 뿌리를 달여 드려라. 그러면 네 소원이 이루어 질것이다."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강선비는 꿈이 하도 이상하여 꿈속에서 본 암벽을 찾아가니 과연 그런 풀이 있어 뿌리를 캐어 어머니께
달여드렸더니 어머니 병은 완쾌되었고, 그 씨앗을 남이면 성곡리 개안이마을에 심어 재배하기 시작하니
이것이 우리고장에서 처음으로 인삼을 인공적으로 재배하게 된 것이라고 하며, 인삼의 모양이 마치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인삼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다.